4월 30일, 마치 금요일같은 화요일
날씨도 좋고 마음이 들떴다.
점심 먹고 공원 산책하고 있는데 마치 불난듯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얼마전 복강경 수술을 받기로 결정했고,
대학병원 수술날 잡히는데 한두달 정도 걸리겠지 예상했는데
당장 내일 입원하고 모래 수술하고 그 다음날 퇴원하는 걸로
번갯불에 콩볶듯 속전속결로 일정이 잡혔다.
사무실 들어오자마자 사정을 말씀드리고 급히 이틀의 휴가를 냈다.
마침 내일부터 연휴 시작이라 이틀만 휴가내면 근로자의 날, 주말, 어린이날 대체휴가까지 쭉 쉴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급히 대리업무자에게 대략적으로 업무를 알려주고,
다 떠넘길 수 없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느정도 마무리짓고 나니 밤 10시... 띠로리.
오빠도 나랑 상황이 비슷했다.
둘 다 저녁도 못 먹고 야근하다가 밤 12시에 만나 배고픔에 동네 밥집을 찾아 헤맸다.
수술하면 당분간 맘껏 먹지도 못할텐데 오빠 하고픈 거 다해-
마지막 만찬 느낌으로 비장하게 새마을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고기 2인분, 찌개 2인분(+고봉밥), 양은도시락까지...오랜만에 먹으니 마이쪙.
다음 날,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수술하기 싫다.. 아픈거 시르다... 힝'
종일 세상 잃은 표정으로 울상인 오빠.
저녁 6시까지만 입원하면 된다며, 최대한 늦게 가고 싶다고 버틴다.
아점으로 또 마지막 만찬 느낌으로 비장하게 ㅋㅋㅋㅋㅋ
오빠 좋아하는 짜장면, 탕수육 잔뜩 먹이고 병원짐을 쌌다.
각티슈/두루마리휴지, 수건, 세면도구/화장품, 가습기, 멀티탭/충전기, 작은 대야.
옷은 집에 돌아올 때 입을 편한 티셔츠와 바지, 양말, 속옷.
신발은 편하게 아예 슬리퍼를 신고 갔다.
입원 수속을 마쳤고, 저녁식사는 신청하지 않았다.
제 발로 걸어가서 입원하고 환자복입고 돌아다니니 적응이 참 안된다.
이렇게 튼튼하고 멀쩡한데. 이렇게 암시롱 안한데...
오빠는 밤 12시부터 금식이므로 퀴즈노스에서 간단히 먹기로 했다.
난 리코타샐러드 + 브로콜리스프. 짱 맛있음. 그래서 다음날 저녁으로 한번 더 먹었다.
오빠는 더블치즈스테이크 샌드위치.
아니 간단히 먹는다더니 완전 리치리치 헤비헤비...
그래 오늘까지만 너 하고픈 거 다해.
다음날 아침 7시 첫 수술을 앞둔 밤.
왜 하루 전날 입원하나 했는데 수술 전 건강상태 체크하고, 채혈하고, 수술을 위해 엄청 두꺼운 주사도 미리 꽂고.. ㅠㅠ
오빠는 자꾸 긴장이 되는지 tv도 안보고 멍 때리다가 잠들었다. (하루종일 양치도 안하고. 심란할테니 참아줬어 내가)
나는 오빠 침대 옆 간이소파에 노트북으로 못다한 일을 하는데..
아, 하기 싫고, 졸립고, 눈알 빠질 것 같고... ㅠㅠ
다음 날, 수술은 잘 끝났다.
마취가 덜 풀려 헤롱헤롱한 와중에도 너무 고통스러워 했다.
간호사쌤이 상체는 완전히 눕지 않게 침대 30도 정도 세우고 눕히라고 주의를 주셨다.
수술 직후라 폐가 찌그러져 있으니 심호흡도 계속 시키라 하셨다.
두시간 동안은 잠들지않게 계속 깨워서 심호흡 시키라고.
안그럼 열 계속 나고 폐가 망가진다 하였다. ㅠㅠ
아니 복강경, 누가 간단한 수술이래.
수술도,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도 무서웠다.
수술대기실에 있는데 갑자기 어떤 의사쌤이 나오시더니 어떤 환자 보호자에게 설명을 했고,
설명을 들은 가족이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해서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수술끝나고 병실에 돌아왔는데 약이 덜 깨 정신 못차리면서도
덥다고 땀난다고 침대에 안눕겠다고 앉아 있고.
내가 오빠 무게 지탱 못해서 낙상할까봐 무섭고,
비몽사몽 잠 억지로 깨워서 심호흡 계속 시키는데도 자꾸 열이 올라서 무섭고,
나 혼자였음 진짜 멘붕이었을텐데 어머님께서 능숙하게 잘 돌봐주셔서 참 다행...
그렇게 악몽같은 수술 당일이 어떻게 지나갔다.
난 꼬박 이틀을 간이 소파에서 잤고, 꽤 오래 잘 잤는데.
낮잠도 자고, 밤에도 자고.ㅋㅋㅋㅋㅋㅋ
이상하게 마치 안 잔 것처럼 눈도 붓고 안떠지고 무지 피곤하더라.
수술 다음 날, 첫 식사로 흰죽이 나왔다.
반도 못 먹긴 했지만, 밤새 수액을 주입해서 식사량은 크게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퇴원 수속을 하고, 진통제와 소화제를 받고, 보험사에 제출할 각종 서류들을 발급받았다.
아직 많이 아파해서 걷을 때 부축해줘야 하고,
특히 침대에서 오르내릴 때, 차에 타고 내릴 때 힘들어했다.
살을 찢은 세 군데 부위, 특히 제일 상처가 큰 배꼽이 많이 아프다 했고,
배 주변에 살이 민감해져서 옷을 입고 있는 것도 매우 아프고 불편해했다.
퇴원 당일 점심, 저녁 - 본죽 소고기야채죽, 단팥죽 (+후라이, 두부부침)
당장 먹을 죽을 사들고 집에 드디어 컴백홈-
죽 1인분을 작은 통 두 개에 소분해서 담아주니 너무 좋다.
이 와중에도 본인 메뉴 단팥죽으로 콕 찝어 요청하시곤 꿀 휘휘 둘러 드시는 남편씨.
점심에는 후라이와, 저녁에는 두부부침과 함께 죽을 먹었다.
입원한 날 저녁, 오빠 친구들이 위로차 찾아왔는데.
그 때 사온 맘모스빵 먹고 싶다고 하도 떼를 써서 코딱지만큼 내어줬다. (간병하면서 나 먹으라고 준 건데 말야)
수술 바로 다음 날이라 움직이는 걸 매우 고통스러워 하는데
운동을 안할 순 없어서 이 방에서 저 방까지 다섯 번 걷자, 열 번 걷자 이런 식으로 횟수 늘려가며
집에서 무리하지 않게 틈틈히 움직여주었다.
지금 소화력이 떨어져서 기름진 음식, 고콜레스테롤 식품, 자극적인 음식, 과식은 당분간 금지인데
이 참에 초딩입맛 만렙인 오빠 식성 좀 클린하게 바꿔볼까?
퇴원 2일차 아침 - 요거트볼 + 현미식빵 1/2 + 후라이
상하목장 플레인 요거트 + 있는 과일 몽땅 + 뮤즐리 약간 + 꿀 약간
퇴원 2일차 점심 - 갈치구이 & 황태무국
결혼하고 일년 반만에 집에서 처음 굽는 생선.
비린내 때문에 엄두가 안났으므로.
1. 토막낸 손질 갈치 겟
2. 물에 헹구고 지느러미 가위로 제거
3. 올리브유+굵은 소금 적당히 뿌려 해동
4. 광파오븐에 '갈치구이' 모드로 굽기
컬리와 오븐이 다했지만, 겉바삭 속촉촉, 간도 적당하여 우리 둘 다 맛있게 잘 먹었다.
라이스 꼬꼬떼에 지은 퀴노아 섞은 흰쌀밥
맨날 오색미, 현미 섞어 먹었는데 아무래도 현미밥은 오빠 소화력이 신경쓰여서 백미밥을 지었다.
지난 한식날 성묘 때 썼던 황태가 있어서 무, 계란 넣고 끓인 황태계란무국
1. 황태 조각조각 손질+물 1컵,+들기름 1T+다진마늘 약간 무쳐 준비
2. 약불에 황태, 무 볶다가 다시마육수 붓고 팔팔 끓임
3. 간장 1T, 소금 약간 넣어 간하고, 마지막에 계란, 대파 풀어 완성
왜 내 국은 투명하지 않고 탁한 걸까?
퇴원 3일차 저녁 - 샐러드 (동태전,고구마,어린잎 샐러드)
퇴원 4일차 아침 - 양배추참치쌈밥
양배추가 위장에 와따인데다 참치쌈장 듬뿍 올려 먹음 완전 꿀맛인데.
오빠가 이렇게 맛없게 먹을 줄 예상 못했다.
쌈장 맛이 강렬한 데도 그게 커버가 안될 정도로 양배추가 싫은가보다.
샐러드랑 양배추 쌈밥 중에 뭐가 더 나아? 했더니 둘 다 비슷하게 싫단다.ㅋㅋㅋ
찜기가 없어서 물붓고 젓가락위에 양배추 올려놓고ㅋㅋㅋㅋ
뚜껑덮고 10분 정도 삶기.
참치 쌈장 제조
1. 집에 있는 야채 눈에 잘 안띄게 다져서 팬에 기름두르고 볶기 (파, 당근, 양파 등)
2. 된장 고추장 1:1, 물 1컵, 고춧가루 1T, 설탕 1T, 다진마늘, 참치 넣고 볶아 볶아 완성
밥에 참기름, 들기름 반반 섞은 후 양배추에 돌돌 말아 쌈장 올려 내면 고소한 냄새가 끝장.
아침 이렇게 먹고, 이모&이모부 모시러 공항으로 출발했다.
오빠는 차 타고 내리는 것도 힘들고, 안전벨트에 상처 부위 조여 아프고,
과속방지턱에 덜컹할 때마다 고통스러워해서 집에 놓고 혼자 다녀왔다.
다행히 어머님이 미역국이랑 반찬 해오셔서 점심을 잘 챙겨먹었다고 한다.
퇴원 4일차 저녁 - 황태계란무국, 잡채, 닭날개조림, 양배추쌈
낮에 어머님이 다녀가신 덕에 잡채와 닭날개조림 반찬이 생겼다.
어제 먹다 남은 국, 아침에 남은 양배추+쌈장, 어머님 반찬으로 저녁 해결.
4일차 정도 되니 한 시간 정도 걸어도 될 듯 하여 백화점으로 산책 다녀왔다.
이모부 우리 결혼식 때 이후로 처음 오신 거라 기념품으로 가져가실 만한 것을 고르고.
우리 가족 모임에서 마실 화이트와인도 한병 겟-
2015년 빈티지가 작황이 좋았던 해라며 추천받았던 프랑스 와인인 루이자도 샤사뉴 몽라셰.
술알못, 와알못이라 맛평은 생략-
집에 돌아가려던 우리의 코를 사로잡은 카페슈슈 마늘빵,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한봉지 겟했다.
백화점 산책 후에 비타민 듬뿍 먹어주고. (살찐다)
퇴원 5일차 아침 - 마늘빵+보노크림스프+닭가슴살소세지+후라이+샐러드
마늘빵 꾸덕꾸덕 바삭 달달하니 맛있다. 역시 마늘빵은 실망시키지 않아.
양가에서 하도 주셔가지고 갑자기 집에 넘쳐나는 과일들.
어떻게든 먹어보려고 잔뜩 깎았는데 결국 배불러서 손도 못대었다.
퇴원 5일차 점심 - 갈치구이, 양배추쌈, 계란찜
하루씩 자고 일어날 때마다 급격히 호전되는 것이 눈에 보였다.
이제 혼자 침대에 눕고 일어서는 것도 잘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저녁 가족모임에 같이 참석하기로 하였다.
미리 주문해뒀던 어버이날 카네이션을 픽업해서 친정으로 고고-
저녁 메뉴는 낙지집이었다.
콜레스테롤이 높아 당분간 금지식품이기도 하고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부담스러워 우리는 물만두를 주문해 먹었다.
예전엔 좌식이었는데 다행히 테이블과 의자로 바뀌어서 식사시간도 큰 무리가 없었다.
아직 운전은 무리여서 내가 싣고 다녔는데 차에 오르내리는 것도 제법 능숙해졌다.
그리고 퇴원 6일째, 나는 출근을 했다.
상황봐서 오전에 일과 마치고 조퇴할까 고민했는데 그러기엔 오빠 상태가 꽤 좋아지기도 했고.
오빠네도 지금 너무 바빠서 친구에 의해 강제로 사무실에 실려갔다.
그러다가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고, 택시는 불러도 안오고, 아무도 안데려다줘서
나보다 늦게 귀가하셨다.
퇴원 6일차 저녁 - 미역국, 잡채, 참치쌈장고추아삭이무침
퇴원 7일차 아침 - 베이글&크림치즈
오빠 아침으로 먹으라고 베이글&크림치즈 요렇게 싸두고 나왔다.
퇴원 6일차부터 슬슬 출근을 시작했고,
이틀 정도 더 지나니 운전도 하고,
무거운 거 들고 무리하게 몸 쓰는 거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 지장 없을 정도로 회복했다.
나 혼자 공들인 초딩입맛 개선 프로젝트는 실패했다.
우리 남편 생살을 찢는 아픔을 견디느라 고생했다.
우리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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